박우빈 장례지도사께 드리는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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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객사 [ 신한카드 ] 작성자 박서* 작성일26-05-31 17:43 조회32회 댓글0건본문
저희 할머니 장례 기간 동안 할머니 잘 모셔주시고 저희 가족 도와주시느라 고생 많으셨는데, 장례가 모두 끝난 이후에 팀장님께서는 편히 쉬셨는지 모르겠습니다.
저희 가족도 장례 절차가 끝난 이후에 집으로 돌아가서 어수선한 집 정리와 약간의 휴식을 취하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장례 기간 동안 팀장님께서 저희 가족 세심하게 신경 써주신 덕분에 저희 할머니를 잘 보내드리고 마지막까지 외로우시지 않도록 경건하게 마무리할 수 있었습니다.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서 정성을 다해주시고 또 동행해 주셔서 글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깊은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저희 할머니께서는 42년에 태어나셨습니다. 한국전쟁 전에 할머니는 아버지를 여의셨고, 전쟁 중에는 소달구지를 타고 피난을 가서 남은 가족들의 생계를 책임지셨고, 전쟁 후에는 다시 서울로 돌아오셔서 남은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쌍둥이 동생분인 저희 작은할아버지와 힘들고 어려운 일들을 도맡아 하셨습니다.
그러시던 중 할머니께서는 정선에서 서울로 상경해 이제 막 일을 배우던 저희 할아버지를 만나게 되셨고, 그 두 분 사이에서 저희 아버지와 고모가 태어나셨습니다.
할아버지께서는 외화벌이와 경력을 쌓으려 당시 한국 건설사가 수주했던 사우디나 리비아의 건설 사업에 참여하려 해외에 파견을 나가셨고, 할머니께서는 할아버지께서 나가 계시는 동안 서울의 작은 방에서 아버지와 고모를 키우시며 그 이후로 평생을 자식 교육과 살림에 헌신하셨습니다.
이후 시간이 지나 아버지와 고모 모두 가정을 꾸리셨고, 아버지께서 고령이 되신 할머니와 할아버지를 모시고 같이 지내시다 2011년 할아버지께서 별세한 이후로 저희 할머니는 그 후 15년 동안 손주인 저희들과 가족들을 돌봐주셨고, 26일 먼저 떠나신 할아버지와 함께 하늘의 별이 되셨습니다.
할아버지께서 떠나신 이후 할머니는 여전히 저희 가족의 살림의 한 중심축이셨고, 고령이신데도 불구하고 작고하신 날까지도 저희 집의 살림을 책임지셨습니다.
매일 아침 6시가 되면 할머니는 가장 먼저 일어나셔서 아침밥을 준비하셨고, 오랜 세월의 내공은 나이가 들고 몸이 약해지셔도 변함이 없으셨죠.
옛날에는 가족 모두 같이 식사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지만 최근에 들어서 각자 식사를 하는 시간이 많아졌습니다. 할머니께서도 혼자 식사를 하시는 모습을 저 또한 봤었으며, 그때 참 마음이 좋지 못했고 그때마다 할머니와 둘이 함께 식사를 한 적도 있었습니다.
지극히 개인적인 얘기지만 제 방과 할머니의 방은 거실을 등지고 마주 보는 구조여서, 생전에 할머니께서 화장실을 가시거나 TV를 보실 때, 호탕하게 웃으면서 전화하실 때 제 방에서 모두 들릴 만큼 활발했고 시끌벅적한, 웃음이 참 많은 공간이었습니다. 저와 할머니 간의 소통도 많았습니다.
이제 장례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서 냉장고 소리와 시계만 돌아가는 조용한 집에서의 생활에 적응하는 것이 쉽지는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할머니와의 기억을 다시 회상해 보니 옛날에 여행을 갔을 때, 근교로 나들이를 갔을 때의 기억과 그때 환하게 찍은 사진들이 지금 느끼고 있는 상실감과 슬픔을 조금은 덮어주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 다행스럽다는 생각도 듭니다.
10년 전까지만 해도 다리를 조금은 절으셨지만 해가 지나갈수록 더 걷기 힘들어하시는 할머니의 모습을 보며 나이를 들어가는 게 참 슬프다는 생각 또한 들고요.
제가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이었을 즈음 바쁜 어머니를 대신해 학교 앞에 마중 나오신 할머니의 모습도 생각나는 오늘입니다.
그때도 빨간 잠바를 입으셨는데 지금도 할머니 방의 옷걸이를 보면 아직도 그 빨간 잠바가 걸려 있는 게 보입니다.
최근에 가장 기억나는 건 할머니와 함께 지원금 신청과 마트에서 같이 장을 본 것이 기억납니다.
또한 생전에 할머니께서는 “가요무대”와 “전국노래자랑”을 좋아하셨습니다.
방으로 들어가지 않고 같이 보면서 담소를 나눈 것도 기억에 남습니다.
평생을 함께하신 분이라 지금도 집에서 어떤 소리가 나면 할머니께서 이동하시거나 오신 소리인 줄 알고 자연스럽게 반응하게 됩니다.
오늘따라 유난히 그 소리가 그리워집니다.
그리고 할머니께 화를 내거나 싸운 시간들도 할머니께 죄송스러워집니다.
아직은 익숙하진 않지만 이제는 할머니와 평생을 함께한 제 21년의 인생을 차분히 정리하고 마무리해야 할 시간이 온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만약에 저희 할머니께서 팀장님을 만나셨더라면 “훤칠하고 멋있는 청년”이라고 칭찬하셨을 겁니다.
저희 할머니는 빈말이나 거짓말을 못 하셨거든요.
저희 할머니는 그런 분이셨습니다.
장례 이후에 영정사진을 집안의 할머니 방에 모시니 정말 슬프고 허전한 상실감이 많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TV 위에 걸린 가족사진에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화목하게 찍힌 사진을 보니 마음이 놓이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오랜 시간 동안, 아니 평생을 함께한 저희 가족에게 저희 할머니는 가장 소중한 사람이며, 그 사랑하는 할머니의 마지막을 가장 아름답게 동행해 주신 분이 박우빈 지도사님입니다.
저희 할머니를 정성스럽게 씻겨드리고 고운 수의를 입혀드리며 마지막 인사도 지도해 주셨고 장지와 추모공원까지 안장을 도와드린 분이기도 하시고요. 무엇보다 할머니의 마지막 가시는 길이 부디 외롭고 힘들지 않게 도와주셨고 또 그렇게 해주셨고요.
3일이라는 그 짧은 작별 인사가 할머니께서 살아오셨던 82년의 인생, 그리고 할머니와 평생 함께했던 그 오랜 세월을 대변하는 건 절대 아니지만, 팀장님께서 함께 해주셨기 때문에 그래도 최대한 경건하고 차분한 마음으로 할머니와의 작별 인사를 마무리할 수 있었다 생각합니다.
할머니와 함께했던 21년의 인생에 마침표를 같이 찍어주셔서 글과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진심으로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었습니다.
오랜 시간은 아니었지만 장례 기간 동안 팀장님께서 보여주신 진심 어린 행동과 따뜻한 마음을 느낄 수 있었으며, 끝까지 고결하게 저희 가족의 작별을 도와주신 팀장님은 정말 좋은 분이기도 하시고요.
팀장님께서 스스로를 “가치 있는 일을 행하는 고결하고 좋은 사람”이라는 것 그리고 그 자부심을 절대 잊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팀장님께서 하시는 업무와 특히 팀장님께서 계시는 가정, 그리고 그 너머에 팀장님께서 걸어가실 미래에 축복과 행복이 가득하시길 진심으로 응원하겠습니다.
고인이 가시는 마지막 길을 함께해 주시고 또 빛내주시는 “박우빈” 장례지도사님께 무한한 존경과 경의를 표합니다.
항상 건강하고 행복하세요.
정말 고맙습니다.
저희 가족도 장례 절차가 끝난 이후에 집으로 돌아가서 어수선한 집 정리와 약간의 휴식을 취하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장례 기간 동안 팀장님께서 저희 가족 세심하게 신경 써주신 덕분에 저희 할머니를 잘 보내드리고 마지막까지 외로우시지 않도록 경건하게 마무리할 수 있었습니다.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서 정성을 다해주시고 또 동행해 주셔서 글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깊은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저희 할머니께서는 42년에 태어나셨습니다. 한국전쟁 전에 할머니는 아버지를 여의셨고, 전쟁 중에는 소달구지를 타고 피난을 가서 남은 가족들의 생계를 책임지셨고, 전쟁 후에는 다시 서울로 돌아오셔서 남은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쌍둥이 동생분인 저희 작은할아버지와 힘들고 어려운 일들을 도맡아 하셨습니다.
그러시던 중 할머니께서는 정선에서 서울로 상경해 이제 막 일을 배우던 저희 할아버지를 만나게 되셨고, 그 두 분 사이에서 저희 아버지와 고모가 태어나셨습니다.
할아버지께서는 외화벌이와 경력을 쌓으려 당시 한국 건설사가 수주했던 사우디나 리비아의 건설 사업에 참여하려 해외에 파견을 나가셨고, 할머니께서는 할아버지께서 나가 계시는 동안 서울의 작은 방에서 아버지와 고모를 키우시며 그 이후로 평생을 자식 교육과 살림에 헌신하셨습니다.
이후 시간이 지나 아버지와 고모 모두 가정을 꾸리셨고, 아버지께서 고령이 되신 할머니와 할아버지를 모시고 같이 지내시다 2011년 할아버지께서 별세한 이후로 저희 할머니는 그 후 15년 동안 손주인 저희들과 가족들을 돌봐주셨고, 26일 먼저 떠나신 할아버지와 함께 하늘의 별이 되셨습니다.
할아버지께서 떠나신 이후 할머니는 여전히 저희 가족의 살림의 한 중심축이셨고, 고령이신데도 불구하고 작고하신 날까지도 저희 집의 살림을 책임지셨습니다.
매일 아침 6시가 되면 할머니는 가장 먼저 일어나셔서 아침밥을 준비하셨고, 오랜 세월의 내공은 나이가 들고 몸이 약해지셔도 변함이 없으셨죠.
옛날에는 가족 모두 같이 식사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지만 최근에 들어서 각자 식사를 하는 시간이 많아졌습니다. 할머니께서도 혼자 식사를 하시는 모습을 저 또한 봤었으며, 그때 참 마음이 좋지 못했고 그때마다 할머니와 둘이 함께 식사를 한 적도 있었습니다.
지극히 개인적인 얘기지만 제 방과 할머니의 방은 거실을 등지고 마주 보는 구조여서, 생전에 할머니께서 화장실을 가시거나 TV를 보실 때, 호탕하게 웃으면서 전화하실 때 제 방에서 모두 들릴 만큼 활발했고 시끌벅적한, 웃음이 참 많은 공간이었습니다. 저와 할머니 간의 소통도 많았습니다.
이제 장례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서 냉장고 소리와 시계만 돌아가는 조용한 집에서의 생활에 적응하는 것이 쉽지는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할머니와의 기억을 다시 회상해 보니 옛날에 여행을 갔을 때, 근교로 나들이를 갔을 때의 기억과 그때 환하게 찍은 사진들이 지금 느끼고 있는 상실감과 슬픔을 조금은 덮어주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 다행스럽다는 생각도 듭니다.
10년 전까지만 해도 다리를 조금은 절으셨지만 해가 지나갈수록 더 걷기 힘들어하시는 할머니의 모습을 보며 나이를 들어가는 게 참 슬프다는 생각 또한 들고요.
제가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이었을 즈음 바쁜 어머니를 대신해 학교 앞에 마중 나오신 할머니의 모습도 생각나는 오늘입니다.
그때도 빨간 잠바를 입으셨는데 지금도 할머니 방의 옷걸이를 보면 아직도 그 빨간 잠바가 걸려 있는 게 보입니다.
최근에 가장 기억나는 건 할머니와 함께 지원금 신청과 마트에서 같이 장을 본 것이 기억납니다.
또한 생전에 할머니께서는 “가요무대”와 “전국노래자랑”을 좋아하셨습니다.
방으로 들어가지 않고 같이 보면서 담소를 나눈 것도 기억에 남습니다.
평생을 함께하신 분이라 지금도 집에서 어떤 소리가 나면 할머니께서 이동하시거나 오신 소리인 줄 알고 자연스럽게 반응하게 됩니다.
오늘따라 유난히 그 소리가 그리워집니다.
그리고 할머니께 화를 내거나 싸운 시간들도 할머니께 죄송스러워집니다.
아직은 익숙하진 않지만 이제는 할머니와 평생을 함께한 제 21년의 인생을 차분히 정리하고 마무리해야 할 시간이 온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만약에 저희 할머니께서 팀장님을 만나셨더라면 “훤칠하고 멋있는 청년”이라고 칭찬하셨을 겁니다.
저희 할머니는 빈말이나 거짓말을 못 하셨거든요.
저희 할머니는 그런 분이셨습니다.
장례 이후에 영정사진을 집안의 할머니 방에 모시니 정말 슬프고 허전한 상실감이 많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TV 위에 걸린 가족사진에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화목하게 찍힌 사진을 보니 마음이 놓이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오랜 시간 동안, 아니 평생을 함께한 저희 가족에게 저희 할머니는 가장 소중한 사람이며, 그 사랑하는 할머니의 마지막을 가장 아름답게 동행해 주신 분이 박우빈 지도사님입니다.
저희 할머니를 정성스럽게 씻겨드리고 고운 수의를 입혀드리며 마지막 인사도 지도해 주셨고 장지와 추모공원까지 안장을 도와드린 분이기도 하시고요. 무엇보다 할머니의 마지막 가시는 길이 부디 외롭고 힘들지 않게 도와주셨고 또 그렇게 해주셨고요.
3일이라는 그 짧은 작별 인사가 할머니께서 살아오셨던 82년의 인생, 그리고 할머니와 평생 함께했던 그 오랜 세월을 대변하는 건 절대 아니지만, 팀장님께서 함께 해주셨기 때문에 그래도 최대한 경건하고 차분한 마음으로 할머니와의 작별 인사를 마무리할 수 있었다 생각합니다.
할머니와 함께했던 21년의 인생에 마침표를 같이 찍어주셔서 글과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진심으로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었습니다.
오랜 시간은 아니었지만 장례 기간 동안 팀장님께서 보여주신 진심 어린 행동과 따뜻한 마음을 느낄 수 있었으며, 끝까지 고결하게 저희 가족의 작별을 도와주신 팀장님은 정말 좋은 분이기도 하시고요.
팀장님께서 스스로를 “가치 있는 일을 행하는 고결하고 좋은 사람”이라는 것 그리고 그 자부심을 절대 잊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팀장님께서 하시는 업무와 특히 팀장님께서 계시는 가정, 그리고 그 너머에 팀장님께서 걸어가실 미래에 축복과 행복이 가득하시길 진심으로 응원하겠습니다.
고인이 가시는 마지막 길을 함께해 주시고 또 빛내주시는 “박우빈” 장례지도사님께 무한한 존경과 경의를 표합니다.
항상 건강하고 행복하세요.
정말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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